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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홍콩무비데이 #첨밀밀
어제 문탐 기획으로 친구들과 좋은 영화 보며 즐거운 시간 가졌다. 다시 한 번 감사. 첫번째 영화 여운이 길어서 적으며 정리했는데 스포일러 왕창. 근데 이 영화 아직 안 본 사람 나 말고 없겠지. 나는 어제 처음 봄. 사실은 여성 시점의 서사라는 얘기 하고 싶어서 끄적이기 시작한 건데, 좋은 영화에 재미없는 리뷰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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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밀밀. 따뜻한 해피엔딩이 왜 그렇게 가슴 저며서 우리는 울었을까.
반환 직전의 홍콩으로 기회를 찾아 본토에서 건너온 뜨내기들의 이상과 현실, 사랑과 거짓을 둘러싼 감동적인 로맨스. 이상과 현실의 충돌 사이에서 젊은 주인공들은 현실에 습격당하거나(모은 돈을 주식시장에서 날려버리는 이요), 현실을 회피하거나(그낭 친구일 뿐이라고 우기는 이요와 소군) 이상을 쫓아 현실적이지 못한 선택을 하곤 한다.(본토의 소정을 불러 결혼하는 소군) 그리고 이상은 때로 꿈 같은 추억을 넘어 이상 수준의 판타지, 곧 정신 이상의 상태로 변질되기도 한다. 하지만 작고한 고모의 유품에서 발견한 페닌슐라 호텔의 물품들과 사진은 변질된 이상의 시작은 바로 현실이었음을 알려준다. 파오의 사랑과 함께 인상적인 대목이었던 고모의 윌리엄 홀든과의 추억. 이 영화 속 윌리엄 홀든은 스티븐 킹 소설을 영화화한 쇼섕크 탈출의 리타 헤이워드보다 큰 역할을 맡았다.
영화는 서사가 작위적이지 않고 사람의 감정을 무척 섬세하게 다룬다. 시나리오가 세심하고(수미쌍관의 마무리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결과물인 영화도 좋은데 감독도, 시나리오 작가도 모두 알려진 사람들이 아니어서 놀람. 영화 보면서 여성 시점의 서사라고 짐작했는데 시나리오 작가가 여성이었다. Ivy Ho.
여성 시점이라고 느낀 이유는, 우선 여주인공의 중요한 남자 둘이 too good to be true일만큼 사랑에 성실하고 배려하는 남자들이라는 점. 여명은 주인공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조폭 파오의 이요를 배려하는 사랑은 거의 판타지 수준. 윤락가 직전 단계인듯한 안마시술소에 엎드린 조폭이 도도한 종업원의 쥐 말고는 무서울 것이 없다(너의 도를 넘은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소리에 미키마우스 타투를 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야반도주를 앞두고는 다른 곳에 자기 여자들이 많다고, 너도 길에 나가면 나보다 좋은 남자 수없이 만날 거라고 이요가 마음 아프지 않도록 챙기며 놓아준다.ㅜ 또한 어린 창녀와 사랑에 빠진 미국인 영어 선생은 에이즈에 걸린 그녀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위해 태국으로 떠난다. 반면, 여명의 부인인 소정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돌아선 남편을 대하는 전형적인 캐릭터일 뿐. 주인공인 이요 역시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인 것 같지만 사실은 헛똘똘이로 두 남자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받는 역할. 행동이나 결단이 주체적인 인물이라기보다(결단이나 행동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크게 보아 남자들의 사랑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감정이 섬세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여성 판타지.
영화에서 인물 하나하나를 정성껏 그려서 좋았는데 제일 좋았던 건, 해피엔딩인데도 무척 짠하고 슬픈 영화였다는 점. 슬픔과 기쁨이라는 대척점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하다니 장조의 곡에서 애잔함을 자아내는 모차르트를 듣는 것 같다. 무척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
무수히 교차하는 이요와 소군의 인생역정, 끓어질듯 다시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그들의 인연, 마디 마디마다 관객들이 조바심내며 안타까워하고 응원하다 그들의 행복한 순간에 같이 기뻐하게 하는 이 영화는 얼마나 파워풀한 영화인가. 운명적인 인연을 다룬 또 다른 영화 세렌디피티는 여기에 비하면 아이들 동화 같다. 역시 좋아하는 영화지만. 아무튼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당장 눈 앞에 보이진 않아도 세상 어딘가에는 저런 운명적인 인연이 분명 존재할 거라고 믿고 싶어진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거의 러브 스토리”다. 거의 러브 스토리일 뻔 했으나 러브 스토리는 아니라니 결국 이런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Comrades: Almost a love story”
https://youtu.be/axfdk2JtEPg
Aug. 16,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