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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sorrow words, the grief that does not speak knits up the o’er wrought heart and bids it break.”
맥베드에서 죄 없는 가족이 몰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말더프에게 말콤이 건네는 유명한 구절. 슬픔과 분노와, 원망과 좌절, 모든 부정적인 감정에 말의 날개를 달아주자. 슬픔은 가라앉아 고이고 분노는 폭발하는 걸 보면 각각 내향인과 외향인의 감정 처리 방식이 아닐까. 엊그제 다시 마주친 구절.
“슬픔에게 언어를 주시오. 말로 쏟아내지 못한 비탄은 고단한 마음에 쌓여 그 마음을 산산조각 내고 말지요.”
Jan. 30
링크 따라 무심코 들어간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오랜만에 들여다 본 모 작가 계정. 지난번에 어린 아이 육아일기가 올라와 있어 놀랐는데 - 그러고 보니 결혼 소식을 들었던 것 같다. - 이번엔 화장한 남편의 유골을 들고 새 작업실을 둘러보던, 심지어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었다. 이제 30대 초반이겠지. 주목받는 작품활동만큼이나 미인으로 유명했던 사람, 멋쟁이 많은 미술계에서도 눈에 띄는 사람이었는데, 어딘가 어두운 기색이 느껴졌다고 이제 와 생각해보는 건 실례일지 모르겠다. 2015년 세종문화회관 지하에서 열렸던 굿즈전에서 줄을 서 작은 사이즈, 그녀의 작품을 샀었다. 이후 간간히 작품활동을 알리는 이메일을 받았다. 젊고 재능 있는 아티스트의 개인적인 불행,이라고 적으면 먼 일인데 나는 많이 놀랐고 마음이 쓰인다. 잘 상상도 되지 않는 힘든 상황, 부디 잘 견디기를. 좋은 날이 찾아오기를. 인생은 정말 좋은 날과 나쁜 날로 가를 수 있는 걸까. 지금 나는 좋은 날을 살고 있나.
https://youtu.be/4O1f-X0Fllc
하고 싶은 일, 해야하는 일, 하기로 되어있는 일 사이에서 사실은 무료하게 보내는 연휴에 어울리는 다정한 음악이다. 손은 한가하지만 시한폭탄 같은 내면의 틱톡에 긴장되는 마음을 가라앉히는 연주, 솔 가베타와 조성진, 자비네 마이어의 2020년 솔스버그 콘서트. 언제까지고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솔 가베타의 우아한 첼로에 그저 모든 걸 덮어주고 안아주는 것 같은 자비네 마이어의 부드러운 클라리넷, 그리고 피아노 독주보다 실내악이 더 편안한 조성진의 단정한 피아노, 모든 것이 완벽하다. 내 안의 긍정의 감각을 깨우는 소리들. 두 번 듣다 베토벤 7중주가 생각나서 피아노 뚜껑을 열고 7중주와 같은 주제가 2악장에 쓰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0번을 쳤다. 조율한지 오래된 피아노는 이제 낮은 음뿐만 아니라 고음도 하나, 음이 어긋난다. 음악이론으로 ABRSM 급수 딸 만큼 피아노를 연습하고, 일본어를 공부하고, 그렇게 일상의 루틴을 다지면 하루하루가 단단해질까.
아직 남은 감기 기운에 늦잠 자고 일어나면서, 바게트 빵에 쟝봉과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올려 샌드위치를 먹으며, 오랜만에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피드를 느긋하게 내려가며, 이것저것 떠오른 생각들이 많았는데 결국 비슷한 얘기들이다. 일년에 50번 연주회 다니던 모모씨는 횟수를 절반으로 줄인듯 하지만 여전히 콘서트 홀 찾고 좋은 영화를 골라 보고 책을 읽고 있었고,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한 또 다른 모모씨는 교외에서 예쁘게 살림하고 있었다. 비키니 수영복을 판매하던 고양이 얼굴의 처자는 살이 좀 붙은 채로 고혹적인 사진을 올리고 있었고, 누군가는 신상이라며 열심히 모델 샷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전처럼 구경한다.
T. S. 엘리엇과 키이츠의 시를 좀 읽고 손택의 "해석을 반대한다" 읽다 말았다. 약속이 많은 12월에 지적 자극을 멀리하고 보내면 1월이 늘 새롭다. 정초에 읽은 건 하루키와 체홉.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영향이었는데 둘 다 그렇게 좋은 줄은 모르는 작가들, 그리고 칙칙한 이야기들. 체홉을 좋아하기보다 체홉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작가들을 좋아했는데 "바냐 삼촌"을 읽으며 체홉을 왜 위대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바냐 삼촌"은 좀 많이 무대 연극 같은 대본이어서 더 잘 드러났는데, 그런 서사를 '바로 그런 식'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체홉이 대단한 점이었다. 체홉의 단편을 읽으면 인생의 아이러니 같은 것을 절묘하게 포착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희곡에선 '그런 형식'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놀라웠다, 희곡이라는 장르의 특성일 수도 있겠지만. 체홉은 참 희곡을 잘 쓴다는 생각. 단편보다 희곡이 인상 깊다.
https://youtu.be/iMH8AgprRcY
시벨리우스를 듣다 버튼을 잘못 눌러 플레이 된 브루크너 7번. 어느 평행 우주로 점프한 것 같다. 무한한 긍정과 환희가 빛나는 세계로. 그런 곳은 어쩌면 색이 존재하지 않는 모노톤 아닐까. 26분 즈음부터 브루크너 시작.

가게에서 가져온 화분 두 개 잘 크고 있다. 물만 주면 되는 걸 왜 그렇게 못 키웠지.